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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편찬원, 경무청 기록으로 보는 서울시민 일상 '국역 경무요칙・일보' 발간

서울역사편찬원, 갑오개혁기 경무청의 규정집과 업무일지 발간

박세태 기자 | 기사입력 2021/11/26 [16:16]

서울역사편찬원, 경무청 기록으로 보는 서울시민 일상 '국역 경무요칙・일보' 발간

서울역사편찬원, 갑오개혁기 경무청의 규정집과 업무일지 발간

박세태 기자 | 입력 : 2021/11/26 [16:16]

서울역사편찬원, 경무청 기록으로 보는 서울시민 일상 '국역 경무요칙・일보' 발간


[시사일보=박세태 기자] 서울역사편찬원은 갑오개혁기 서울사람의 일상을 보여주는 서울사료총서 제18권 ≪국역 경무요칙・일보≫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간한 《국역 경무요칙・일보》는 갑오개혁기 서울의 치안을 담당했던 경무청(警務廳) 관련 사료이다.

경무청은 술 취한 주민이나 미아를 보호하고 인명이나 병자를 구호하는 민간인 보호업무, 주민 간 갈등을 중재하거나 싸움을 단속하며 민간인 분쟁의 해소업무, 절도 등 범죄에 대한 방범업무, 새로 들어온 외부인이나 수상한 행인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대문이나 화재를 단속하여, 관내의 치안 및 시설물 상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경무청에서는 하루하루 있었던 각종 사건 사고를 정리하여 ‘일보(日報)’로 남겼다. 그 중 일부가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데, 바로 서울사료총서 제18권에 실린《본청일보(本廳日報)》, 《남서일보(南署日報)》, 《중서일보(中署日報)》, 《동서일보(東署日報)》이다.

《본청일보》는 1896년 8월 경무청에서 작성한 것이다. 경무청과 각 경무서 간의 주고받은 문서, 경무청으로 들어온 각종 민원과 소원(訴願), 주요 사건을 간단하게 요약했다. 이와 함께 경무청에 유치된 범인 수와 변동사항을 매일 정리하여, 새로 체포된 인원, 검사나 감옥으로 송치되거나 석방된 사람들의 정보까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했다.

한편 한성부를 관할하던 경무청 산하 5개 경무서는 직원들의 출근현황, 감독 순찰 기록, 관내에서 있었던 사건사고, 객주(客主)에 드나든 상인 관련 정보 등을 기록했다. 그중에 3건의 경무서 일보가 남아 있다.

《남서일보》는 경무청 산하 5개의 경무서 중 경무남서에서 생산한 문건이다. 1895년 5~6월, 윤달 포함 총 3개월간 한성부 남서 일대(오늘날 청계천과 남산 주변)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 수 있다.

《중서일보》는 한성부 중서 일대(오늘날 종로와 청계천 주변)을 관할했던 경무중서에서 1896년 6~7월 2개월간의 작성한 내용이다.

《동서일보》는 1897년 5월 한성부 동서 일대(오늘날의 종묘와 동대문 주변)을 관할했던 경무동서에서 작성한 보고문건이다.

▲ 1895년 여름 서울, 콜레라가 발생하여 긴박했던 경무청 사람들.

1895년 여름은 수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추정할 만큼 콜레라가 위협을 떨치던 시기였다.

《경무요칙》'호열자병 예방소독 집행 규정'(내부령 제5호) 제1조에 는 “경무서에서 호열자병 및 토사병 환자가 있다는 보고를 들으면 한편으로 검역소에 급히 보고하여 소독법을 시행한다. 단, 순검이 환자가 있음을 보고 들었거나 또한 그러한 보고를 받았다면 속히 상관에게 보고한다. 관할 구역 내에서 발생한 경우에는 총순 1명, 순검 3명이 해당 장소에 출장을 나가서 소독법을 시행해야 한다. 단, 다른 서 관할 구역 내에 관계된 것은 이러한 내용을 해당 서에 급히 보고한다.” 고 되어 있으며, 환자의 거주지와 성명, 연령과 직업과 발병일시와 병명 원인을 경무청에 급히 보고하도록 규정했다(제2조). 당시에도 전염병에 대해서 신속하고 철저하게 방역하고 대처하려는 정부기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6월 콜레라가 만연했던 시기의 '남서일보'에는 호열자로 사망한 사람들, 검역소에서 지급한 약의 수량, 도성 밖으로 시신을 내보낸 시점(‘파문(把門)주의’ 항목)까지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 술취한 사람을 챙기고, 인명을 구조하던 한성부 경무청의 일상

1896년(건양 원년) 6월 17일의 '중서일보'의 기록을 보면, 만취하여 야주현 도로에 가로누웠던 본청 사령 김순근(金順根)을 황토현 교번소에서 보호하다가 술이 깬 후 돌려보낸 일, 장통방 철교 교번소 관할 내 입동(笠洞, 오늘날 관수동 일대) 제65호에 사는 김성구(金聖九)의 집이 전부 무너질 때 대들보가 무너져서 거의 죽을 지경인 것을 해당 교번소 순검 최한형(崔漢炯)이 순찰할 때 보고 이웃 주민을 지휘하여 재목을 거두어 치우고 즉시 구조하여 이웃집에서 조리하도록 한 일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 서울 관내 사람들의 혼인과 이사 등 사소한 일까지 파악

한성부 경무서에서는 관할 지역 사람들의 동정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1897년(건양 2) 5월 28일 '동서일보' 에는 ‘연화방(종로 4가 일대) 16통 6호 한성규(韓成奎)의 아들과 양주(楊州) 거주민의 딸이 혼인하였으며, 15통 7호 이기영(李基永) 집의 남성 2인, 여성 1인이 이교 관할로 이사해 갔고, 그 집에는 북서 관할에 살던 박양래(朴亮來) 집의 남성 2인, 여성 1인이 와서 거주한다.’는 순검 고완수(高完洙)의 보고내용이 있다.

서울사료총서 제18권은 경무청에서 작성한 일보의 이해를 돕기 위해, 경무청의 내부 규정집(경무요칙)을 함께 수록했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국역 경무요칙・일보》는 갑오개혁기 서울 사람들의 생활문화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료이다.”고 말했다.

이 책은 ‘서울책방’에서 구매(15,000원)할 수 있으며, 12월부터는 서울역사편찬원 홈페이지에서 전자책(e-book)으로도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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