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시장의 ‘양극화(兩極化 │ Polarization)’ 현상이 해소는커녕 갈수록 심화(深化)하고 있다. 전형적(典型的)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차이에서 발생하는 극심(極甚)한 양질의 일자리 격차다.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이 과실을 독점하는 노동시장 ‘이중 구조’의 벽이 갈수록 높아지고 골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인공지능(AI) 시대가 가속화(加速化)를 거듭하면서 발생하는 젊은 세대 일자리의 급속(急速)한 감소다. 두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노동시장을 덮치고 있는데도 정책 대응은 소걸음으로 더딜 뿐이다. 이를 방증(傍證)하듯 고용 시장에서 대기업 등 ‘질 좋은 일자리’는 전체의 16%에 불과하지만, 이런 곳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받아 가는 보수는 그 외 일자리 종사자들 보수의 1.7배 가까이 많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4월 12일 발간한 ‘노동시장 이중 구조(질 측면의 일자리 양극화) 해소, 결국은 좋은 일자리가 답이다’란 보고서는 국내 노동시장에서 질 좋은 일자리 쏠림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극명(克明)하게 보여 주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노동시장 중 대기업 고용주 및 상용근로자 등 ‘1차 시장’ 종사자 비중이 전체의 15.9%가량이라고 추정했다. 그 외 84.1%에 해당하는 일자리는 중소기업 근로자, 계약직 등 임시근로자, 자영업자, 무급가족종사자, 일용근로자 등 ‘2차 시장’ 종사자로 분류됐다. 문제는 1차 시장과 2차 시장 종사자의 보수 차이는 1.7배에 달했다. 1차 시장 종사자의 월평균 급여는 495만 원이었고 2차 시장 종사자는 292만 원이었다. 월 수익 차이가 203만 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근속 연수도 2배가량 차이가 났다. 1차 시장 종사자는 평균 11년 3개월 근무하고 있는데, 반면 2차 시장 종사자는 근속 기간이 고작 5년 9개월뿐이었다. 사회보험 가입률도 1차 시장은 100%에 육박했지만 2차는 70%를 밑돌았다.
이와 유사한 분석은 최근 경제단체 등에서도 나온 바 있다. 지난해 국내 상용근로자의 연 임금 총액이 처음으로 평균 5,000만 원을 넘어섰다. 다만 업종·기업 규모별 격차는 여전히 크게 벌어져 임금 양극화가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경제조사본부가 고용노동부 원자료를 분석해 지난 3월 22일 발표한 ‘2025년 사업체 임금 인상 특징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상용근로자의 연 임금 총액은 평균 5,061만 원으로 전년 대비 2.9% 증가했다. 상용근로자는 계약기간 1년 이상 계약직과 정규직·무기계약직을 포함한다. 연 임금 총액은 정액 급여와 특별급여를 합산한 월평균 임금을 연간 기준으로 환산한 수치다. 임금 상승은 특별급여 증가가 주도했다. 정액 급여 인상률은 2.7%로 전년(3.2%)보다 낮아졌지만, 특별급여 인상률은 4.3%로 전년(0.4%) 대비 크게 확대됐다. 2020년과 비교하면 연 임금 총액은 19.9% 증가했다. 이 가운데 특별급여 인상률은 28.3%로 정액 급여(18.7%)보다 9.6%포인트 높았다.
기업 규모별 격차도 두드러졌다. 우선 300인 이상 사업체는 7,396만 원인 데 반하여 300인 미만 사업체는 4,538만 원으로 집계됐다. 대기업 임금을 100으로 볼 때 중소기업은 61.4 수준에 그쳤다. 대기업은 특별급여 증가 영향으로 임금 상승세가 확대한 데, 반면 중소기업은 정액·특별급여 모두 인상 폭이 둔화했다. 특히 300인 이상 사업체 인상률은 3.9%인데, 반면 300인 미만은 2.5%로 격차가 벌어졌다. 업종별로는 금융·보험업이 9,387만 원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전기·가스·증기업 등이 9,103만 원, 전문·과학·기술업 등이 6,873만 원, 정보통신업 6,384만 원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숙박·음식점업 등은 3,175만 원으로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최고 업종과 최저 업종 간 격차는 6,212만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나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최근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요구에서 드러난다. 노조는 반도체 영업이익의 15% 기준으로 최대 40조 원이 넘는 성과급을 요구했다. 지난 4월 1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창립 이래 최초로 파업에 돌입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3월 29일 노조원 찬반 투표에서 쟁의행위안이 통과되며 이달 중 사업장 집회를 거쳐 5월 1일부터 파업에 들어갈 것을 예고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는 초과이익성과급(OPI)으로 영업이익의 20%를 재원으로 삼아 상한 없이 지급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재계에선 삼성전자가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상한 없는 성과급으로 지급할 경우 다른 그룹사에도 동일한 제도 도입 요구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최대 고용 기업인 삼성전자의 보상체계 개편은 계열사를 넘어 타 기업으로 확산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및 복지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형국이다. 노동시장에서 이중구조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소기업 근무자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중기 취업을 외면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는 경제 활력을 갉아먹는 고질적인 병폐로 꼽힌다. 강성 노조의 보호를 받는 대기업 정규직은 고임금과 고용 안정의 특혜를 누리지만, 하청 업체나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직원 평균 연봉이 1억 6,000만 원에 이르는데 40조 5,000억 원을 성과급으로 달라는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를 보면서 박탈감과 허탈함이 커질 수밖에 없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렇듯 대·중소기업 간 일자리 ‘이중 구조’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양질의 일자리를 더욱 늘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새로운 일자리 문제가 확산하고 있어 더욱 우려를 가중한다. 무엇보다 AI의 급속한 확산으로 일자리의 총량 자체가 줄고 있어서다. 사무직과 서비스직 할 것 없이 AI로 대체되는 현상이 심각할 정도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시장 진입 단계에 있는 청년층에 미치는 타격이 실로 걱정스럽다. 경력과 네트워크가 없는 예비 취업자들은 아예 일자리 진입 자체가 막히는 문제가 벌어지고 있어서다. 기존의 대·중소기업 간 ‘이중 구조’ 문제에 더해서 AI로 인한 세대 간 ‘이중 구조’까지 겹치고 있다. 이대로라면 노동시장의 균열은 세대를 넘어 사회 전체의 균열로 번질 우려가 매우 커 보인다.
올해 1월, 현대차그룹의 ‘인간 중심 AI 로보틱’ 전략에 기반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혁신가들의 등장(Innovators show up)’이라는 주제로 지난 1월 6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그 화려한 막을 올렸던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경연장인 ‘소비자가전 전시회(CES) 2026’에서 공개됐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지, 추론, 제어, 상호작용 능력을 지닌 아틀라스의 가격은 1억 8,000만 원가량으로 추정된다. 현대차그룹은 아틀라스를 공장에 투입할 경우, 2년 안에 투자비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AI라는 신기술이 노동 현장에 도입되기 시작한 셈이다. 당연히 노동자로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현대차노조는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도 들어올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덧붙였다.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반대가 아니라 논의 요청이었다. 다만, 무엇을 논의해야 할지는 노사 모두 막막하다. 현대차만이 아니라 노동 현장 곳곳에 도입된 AI는 기존 노동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올해 1분기 미국 내 IT산업에서 5만 2,050명의 인력이 해고당했고, 이들이 대부분 AI 도입과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AI로 인한 고용시장 재편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더욱 뼈아픈 것은 한번 2차 시장에 발을 디디면 1차 시장으로 올라갈 수 없는 이동성(移動性)의 붕괴다. 해고가 어려운 경직된 노동시장 탓에 대기업은 신규 채용을 꺼리고, 높아진 인건비 부담을 하청 업체에 전가하며 격차는 갈수록 커지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1차 시장의 높은 벽과 2차 시장의 열악한 처우에 좌절한 청년들은 일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그냥 쉬었음’ 상태로 내몰린다.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일도 하지 않는 상태에 머무는 ‘그냥 쉬었음’ 청년(20~30대)이 지난해에만 70만 명을 넘었다.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월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노총과의 간담회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 언급했다. “이제 정규직을 안 뽑는 게 당연한 상식이 돼 버렸다.”라며 “(기존 정규직의) 자녀들이나 다음 세대는 정규직 자리를 결코 누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기간제 2년 제한’에 대해선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일들이 노동자들의 위상을 약화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념이 아닌 실용으로 접근할 문제라는 인식이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의 깊은 골을 메우기 위해서는 사회적 양보와 타협이 대전제이자 필수적이다. 대기업 정규직의 과도한 보상과 보호 수준을 낮추면서 중소기업·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사회 안전망 확충에도 나서야 한다. 고용 유연성을 강화하고 연공형 임금 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하는 등 양극화를 해소할 대안을 의당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굴절된 노동시장의 문제 해법 방향은 분명하다.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이중 구조’의 뿌리를 뽑는 동시에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일자리 진입 경로를 설계하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한 원·하청 구조를 바로잡고, 직무 중심의 채용 문화와 재교육·직업훈련 체계를 혁신해야만 한다. 이 과정에 노동시장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전향적(轉向的)인 태도 변화도 요구된다. 고질적 양극화와 AI 발(發) 일자리 충격이 동시에 밀려오는 지금, 노·사 모두 기득권에 매몰(埋沒)되고 안주(安住)하다간 모두가 한꺼번에 공멸(共滅)일 뿐이다. 노동시장이 무너지면 산업이 흔들리고 당연히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 노동시장의 대전환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다. 그 위기감을 정부와 기업, 그리고 노동계 모두가 공유(共有)하고 공동(公同)으로 유연한 선제 대응해야만 한다. <저작권자 ⓒ 시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
많이 본 기사
|